이성계 여진족설에 대한 상식적인 반대 의견
애당초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의 본거지는 고려 내지였습니다.
이성계가 여진족이 아니냐 라는 이야기가 있어
정말 간단하게 상식적인 면에서만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조에 여진족 출신이 재상에 오른적이 있긴 합니다만
고려 문종조 흑수말갈인으로 재상이 된 고열(高烈)
고려 말 사대부들이 여진족 출신을 왕으로 추대할 만큼 개방?적인 사회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또한 당시 쌍성총관부, 즉 화주는 현 금야읍으로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사서에 의하면 이자춘의 본거지는 화주의 동남쪽 흑석산 일대입니다.
이곳은 본시 고려와 여진 갈라전의 경계였던 정평~함흥 이남이지요.
즉 정평이남은 본시 고려인이 살던 곳입니다.
또한 고려인 최한기(崔閑奇)의 딸 의혜왕후(懿惠王后), 즉 이성계의 모친의 묘도 이근방에 있습니다.
함흥이 이씨 가문의 중심이 된 것은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수복하고 난 후입니다.
세종실록지리지 영흥대도호부中
준원전(濬源殿)【부의 동남쪽 흑석산(黑石山)에 있으니, 곧 우리 환조(桓祖)의 옛 집으로서, 태조(太祖)가 탄생한 곳이다.
태조의 쉬용(晬容)을 모셨다.】
준원전 : 함경남도 영흥군 순녕면 흑석리 → 중양리 → 솔밭리
고지도는 여기를 참고하시고요
지도출처 : 동여도(김정호)
물론, 선대인 이안사가 거주한 경흥도 생각해 볼 만은 합니다.
세종대왕이 공험진을 두만강과 두만강 이북으로 주장한 결정적 이유
참고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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