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여진족이 용, 호랑이, 물개, 원숭이냐?
때는 바야흐로 여진족이 금을 세워 요를 거세게 몰아붙일 무렵,
송나라 휘종 임금께서는 친애하는 동관의 북벌정책을 지지하시고,
드디어 여진족과 손을 잡고 요의 뒤통수를 후려쳐,
오래전 거란족에게 빼앗긴 연운 16주를 되찾으려고 하였는데
하여 바다를 건너 드디어 여진족과 해상 동맹을 맺게 되었는데......
휘종 임금께서 금에 다녀온 사신에게
"여진족 놈들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들이더냐?" 라고 물으셨는데
사신 왈
"여진족 애들은 말탈 때는 용과 같고, 걸을 때는 범과 같고, 수영도 잘해서 물개와 같고,
성을 올라갈 땐 원숭이 같아요. 정말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대단해요" 라고 대답하니
휘종왈
"헐~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여진족이 뭐? 용?범?물개?원숭이?
이런 웃긴 넘을 보았나~ 넌 이제부터 사여다.
4번이나 xx와 같다고 하였으니 네 별명은 4여다고!"
사여(四如) : 여진족이 [~과 같다]는 말을 네 번이나 하였다 하여 붙은 별명
급사(給事) : 9품 정도의 하급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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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경사문(經史門)中
사여급사(四如給事)
송 휘종(宋徽宗) 시대에 급사(給事) 이업(李鄴)이 금(金) 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금 나라 사람은 말을 타는 데는 용과 같고 걷는 데는 호랑이와 같으며, 물을 건너는 데는 물개와 같고 성에 올라가는 데는 원숭이와 같다.”고 하였다.
그가 오랑캐의 형세를 너무 과장해서 말했다 하여 그를 사여급사(四如給事)라 하였다.
지금 헤아려보면 그 말이 진실로 옳다. 적국에 사신가는 방법은 그 현실을 정탐하는 것이 옳다. 그 강한 것을 보고도 약하다고 한다면 어찌 옳겠는가? 그것이 송(宋) 나라가 더욱 함몰하게 된 원인이다.
요약 : 아니 사신 말을 믿어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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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 태조 본기에 보면 아골타가 송사신 조양사와 요사신 습니열을 이끌고 직접
요의 상경에 대한 공성전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금사 태조본기 1120년 기사中
上京人恃禦備儲蓄爲固守計。
甲寅,亟命進攻。上謂習泥烈、趙良嗣等曰:
「汝可觀吾用兵,以卜去就。」
上親臨城,督將士諸軍鼓噪而進。自旦及巳,闍母以麾下先登,克其外城,留守撻不野以城降。
趙良嗣等奉觴爲壽,皆稱萬歲。是日,赦上京官民。
상경(上京)의 사람들이 고수(固守/굳게 지킴)의 계책을 마련하여 (양식을) 저축(儲蓄/쌓아놓고 저장함)하여 갖추어 막았다.
갑인일(甲寅日)에, 빠르게 명하여 진공(進攻/나아가 공격함)하게 하였다.
상(上)이 습니열(習泥烈)과 조양사(趙良嗣)등에게 이르러 말하길
「너희들은 나의 용병(用兵)이 꽤 볼만할 것이니, 거취(去就/진퇴,향배)를 점치어 보아라.」
상(上)이 친히 성을 내려다보고, 장사(將士/장졸)과 제군(諸軍/각 군)을 감독하여
고조(鼓噪/북을 치고 함성을 지름)하여 나아갔다.
해가 돋을 무렵부터 사시(巳時/09~11시)에 이르기까지, 도모(闍母)가 휘하(麾下)를 거느리고 선등(先登/맨 먼저 오름)하여,
그 외성(外城)을 함락하니, 유수(留守) 달부야(撻不野)가 성을 들어 항복하였다.
조양사(趙良嗣)등이 잔을 올려 장수를 비니, 모두 만세(萬歲)를 불렀다.
이날에, 상경(上京)의 관민(官民)을 사(赦/용서)하였다.
요약
아골타 : 야 너희들 잘 봐 우리가 얼마나 공성전을 잘하는지 ㅎㅎ
훗날 해상 동맹 체결 후 요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출격한 동관이 이끄는 1차 20만은 얼마 싸우다 후퇴하였고, 2차 10만 송군은 연경의 1만 요군에 처참하게 패배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쟁 과정을 보면, 송군은 대부분 겁을 먹고 도주하다가 서로 짓밟혀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연경을 두 번이나 함락시키지 못한 동관은 패전의 죄를 받을까 두려워
금에게 돈을 주고 연경을 함락시키고자 합니다. 즉 금에 원군 요청을 한 것입니다.
이에 아골타는 다시 1122년 12월에 연경을 직접 함락합니다.
이때도 송에서 사신 조양사와 마확이 왔는데,
아골타는 송에게 어찌 그리 대군을 이끌고도 질 수가 있느냐? 너희는 군법이 없느냐?
라고 묻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역대병요中 (번역 국방군사연구소)
금나라 군주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약 군법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군을 통솔할 수가 있겠는가.
1~2일 사이에 우리는 관문에 도착할 것이니, 너는 우리 금나라의 전투하는 모습을 잘 살펴보라, 도망하는 자가 있는가 말이다"
역대병요(歷代兵要) 中
金主云若不行法何以使人一兩日閒到關汝觀我家用兵有赱者否
금주(金主)가 이르기를
만약 행법(行法/법을 행함)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인(使人/사람을 부림)할 수 있겠는가?
하루 이틀간에 관(關)에 이를 것이니,
너는 아가(我家/우리 가문, 우리나라)가 용병(用兵)함에 있어 달아나는 자가 있는지 보아라!
송사전문(宋史全文) 中
阿固达云:『若不行法,何以使人? 一两日间到关汝观我家用兵,有走者否』
아고달(阿固达)이 이르기를
『만약 행법(行法)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인(使人)할 수 있겠는가?
일양일간(一两日间)에 관(关)에 이르게 되면 너는 아가(我家)의 용병(用兵)을 보아라, 달아나는 자가 있는지 말이다』
요약 : 우리 여진족 군법 짱셈!
연경을 함락하고, 동관이 막대한 세폐를 바치고 16주 중에 6주가량을 얻자,
휘종은 동관을 왕에 봉작합니다.
송사 동관 열전中
臘雖平,而北伐之役遂起。
既而以復燕山功,詔解節鉞為真三公,加封徐、豫兩國。
越兩月,命致仕,而代以譚稹。
明年復起,領樞密院,宣撫河北、燕山。
宣和七年,詔用神宗遺訓,能復全燕之境者胙本邦,疏王爵,遂封廣陽郡王。
방랍(方臘)이 비록 평정되었지만, 이어 북벌지역(北伐之役)이 마침내 일어났다.
이미 연산(燕山)을 회복한 공(功)으로써,
조(詔)하여 절월(節鉞/옥절과 부월/임금이 출전하는 장수에게 내리는 임명장과 도끼)을 풀고,
(동관을) 진삼공(真三公)으로 삼았으며, 서(徐)와 예(豫)의 양국(兩國)을 가봉(加封)하였다.
두 달이 넘어가자, 치사(致仕/나이 70에 이르면 은퇴함)의 명(命)이 내렸고, 그리고 담진(譚稹)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명년(明年/다음 해)에 (치사에서) 복기(復起/다시 일어남)하여,
추밀원(樞密院)을 거느리고, 하북(河北)과 연산(燕山)을 선무(宣撫/베풀고 어루만짐)하였다.
선화(宣和/휘종의 #6 연호) 7년 (1125년), 조(詔)하여 신종(神宗)의 유훈(遺訓)을 인용(引用)하여,
능(能)히 연(燕)의 국경(國境)을 온전히 회복하는 자는 본방(本邦/우리나라/송)이 보답하여,
왕작(王爵/왕의 작위)를 올리게 하였는데, (이로인해 동관을) 마침내 광양군왕(廣陽郡王)으로 봉(封)하였다.
*북벌지역(北伐之役) : 송이 요에게 빼앗겼던 연운 16주를 회복하기 위해, 금과 해상동맹(바다를 건너 여진족과 동맹을 맺음)을
체결하여 요를 협공하면서 벌어지는 전쟁, 동관이 이끄는 20만 송군이 요의 연경을 공격하였으나
요군 기병 1만에 참패하니, 금군이 연경을 함락하였고 이에 동관 등은 돈을 내어
금에게서 6성을 교환하였고 금군은 송군이 연약함을 깨닫게 됨.
연지역을 회복한 공으로 동관은 왕에 책봉되었으나, 곧이어 금이 요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 붙치자
연운의 나머지 지역도 회복할 요량으로 동관이 천조제를 송에 끌어들이려 하였으나
이를 알고 분노한 금 태종 오걸매는 곧장 송을 공격하여 개봉을 두 차례 포위하고 결국 북송은 멸망함.
*1054년 생인 동관은 1123년 70세에 이르러 치사(은퇴)함
요약 : 동관 앗싸 돈으로 왕샀다.
그리고는 요가 멸망 직전에 가자, 이번에는 나머지 10주도 되찾을 요량으로
천조제와 접촉하고 금의 뒤통수를 노리게 되자
금 태종 오걸매는 천조제를 잡자마자 곧바로 송을 공격해 1년도 안돼
휘, 흠종은 여진족에게 끌려가 여진 최 동북방 오국성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속동문선(續東文選) 김일손(金馹孫)의 시(詩) 中
이 한 지방 다투다가 싸움되어 / 爭一州而啓釁
오국성에 포로 되었네 / 陷五國之孤囚
요약 : 아 연운 16주 그것이 무엇이길래. 이게 다 동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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