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종이야기(24) 최충의 생년에 대한 의문

 고려 문종조 문하시중에 대해 알아 보고 있는데, 2대 시중 최충의 생몰년이

제가 조사한바 하고는 차이가 있어 의문이 드네요.


러곳에서 최충의 생몰년을 984년~1068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당대의 금석문등에 최충의 생년이 나온것은 제가 조사한 바로는 없구요,

 

이는 1053년의 고려사 열전의 치사기록을 보고, 생년을 1053-70+1 = 984년으로 추정하는듯 싶습니다.

이는 치사년도를 70세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사 최충 열전中

문종7년(1053) 최충이 나이가 칠순이 되었으므로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요청하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허나 최충이 치사요청을 한것은 1053년 12월입니다. 즉 69세의 12월에 치사요청을 하는

고려의 법대로 행한것이지요.

 

고려사절요 문종7년(1053년) 12월 기사中

제하기를, “시중 최충은 대대로 유종(儒宗)이며 삼한의 기덕(耆德)이었다. 지금 비록 늙어서 물러가겠다 하나 차마 윤허할 수 없으니, 해사(該司)를 시켜 옛 법을 상고하여 궤장을 내려주어 일을 보게 하라." 하였다.

 

고려사절요 문종원년(1046년) 12월 기사中 

이부가 아뢰기를, “예전 제도에, 모든 관료들은 글을 올려 노퇴를 청한 자가 아니라도 69세가 되면 그해 말에 해직되는 것이 예인데, 이제 다방태의소감(茶房太醫少監) 김징악(金徵渥)의 나이가 치사할 때가 되었으니, 파면해야 마땅합니다." 하니, 제하기를, “징악은 명의(名醫)로 그 직책이 근시(近侍)에 있으니, 수년 간 더 그 자리에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 하였다.

 

즉 1053-69+1 = 985년이 생년이지요.

 



최충의 손자인 최사추도 잘못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최사추는 묘지명이 있어서 더 확실하지요.


최사추묘지명 中

송(大宋) 정화(政和)5년 을미년(예종 10, 1115) 봄 2월 무오일에 삼중대광 보정치리추성봉국좌명공신 개부의동삼사 수태사 중서령 판상서이부사 감수국사 상주국 대령군개국후 식읍 2,500호 식실봉 1,500호(三重大匡 輔正致理推誠奉國佐命功臣 開府儀同三司 守太師 中書令 判尙書吏部事 監修國史 上柱國 大寧郡開國侯 食邑 二千五百戶 食實封 一千五百戶)로 벼슬에서 물러나 은퇴한 최공(崔公)이 병으로 대궐 동쪽 자운사 적선원(慈雲寺 積善院)에서 돌아가시자,

(중략)

공의 이름은 사추(思諏)이고, 자는 가언(嘉言)이며, 성은 최씨(崔氏)이다. 어릴 때의 이름은 사순(思順)이고, 선조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의 해주(海州) 사람이다. 향년 80세이다

 

즉 1115-80+1 = 1036, 즉 1115년 향년80은 생년 1036년이어야 합니다.

 

즉 1104년에 치사를 요청합니다. 고려의 치사요청은 보통 69세 해의 12월에 합니다.

즉 1104-69+1 = 1036년

 

헌데, 네이버 국역고려사나 각종 백과류에서는 1034년이 생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려사 최사추 열전中

숙종 9년(1104)에는 수태보(守太保)로 있으면서 나이를 들어 세 차례나 표문을 올려 사직을 간청하자, 위계정(魏繼廷)이,

“최공께서 관직에 계시기에 우리들이 태산과 북두처럼 우러러보며 나라의 중요한 일은 모두 그 의견에 따랐는데, 이제 나이를 들어 벼슬을 그만두겠다고 청하시면 국정은 어찌 되겠습니까?”
라고 반대하였다. 이 때 왕이 수춘궁(壽春宮)에서 소연을 베풀고는 최사추를 그 자리에 불렀다. 최사추가 일어나 왕에게 만수무강을 비는 잔을 올리자, 왕이 친히 그에게 술을 따르면서 그 손을 잡고 “경이 굳이 물러간다면 누구와 정사를 함께 하겠는가? 짐이 어진 이를 우대하고 늙은이를 중히 여기니 차마 따를 수 없다.”면서 만류했다. 이에 최사추가 “일흔에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은 예법입니다. 신은 이미 늙어 나라에 이익될 것이 없으니, 바라옵건대 돌아가려는 뜻을 이루게 해주소서.”라고 대답하니 왕이 결국 허락하였다
.



해주최씨 족보에는 최충은 생몰이 986년~1068년 이고 향년 83세로 되어 있습니다.

최사추는 1034년~1115년 이고 향년 82세로 되어 있습니다.

묘지명에 향년 80세로 되어 있는데, 82세로 족보에 있는것은 오류라고 생각이 드네요.



요약

1. 최충

- 백과사전 984~1068 (향년 85세)

- 해주최씨 족보 986~1068 (향년 83세)

- 고려사를 근거로한 제 생각 985~1068 (향년 84세)


2. 최사추

- 백과사전 1034~1115 (향년 82세)

- 해주최씨 족보 1034~1115 (향년 82세)

- 금석문 및 고려사를 근거로한 제생각 1036~1115 (향년 80세)


어떤것이 맞는지 의문입니다.


P.S) 요즘에는 70세를 기준으로 70세 이전은 향년(享年)과 70세 이후는 수(壽)라고 한다는데요,

        고려사에서는 나이 구분없이 신하는 향년, 임금은 수라고 하였더군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