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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괴자마를 막은 것은 마찰도가 아니라 악비입니다.

  정묘호란 후 인조가 신하들에게 대책을 묻습니다. <옛날에 천하무적 금 올출의  괴자마를  남송의  악비가 마찰도로 이겼다 고 들었다.    헌데 왜 남송군은 이후에 마찰도를 주력으로 쓰지 않았는고?   또 무기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왜놈은 총을 가지고 있고, 되놈은 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둘 다 가지고 있고 튼튼한 성도 있다. 헌데 왜!!!?? 임진란과 정묘란에 그 지경이었는고?> 하니  동명(東溟)  정두경( 鄭斗卿) 이 대책으로 아룁니다.  요지는 병기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은 인조가  왜 남송이 악비 이후로 마찰도를 주력으로  삼지 않았나  하고 말하는 점입니다. 그렇게 중기병에게 유리하다면 마찰도가 주력이어야 하는데,  이후에 마찰도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제가 알기로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명집(東溟集)  대책(對策)  中 왕은 묻는다. 병가(兵家)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도구에는 나름대로 장기(長技)가 있다. 자신의 장기를 가지고 상대방의 단기(短技)를 공격한 다음에야 그 성과를 거둘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를 거둘 수가 없다. 중국의 기예는 이적(夷狄)과 같지 않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령(鼂令)이 그 대강을 말하였다. 그런데 혹 고금(古今)에 따른 다르고 마땅한 점이 있거나, 전하여 익히는 데 미진한 점이 있는 것인가? 배와 수레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어느 때에 처음 시작되었는가? 헌원씨(軒轅氏)의 지남거(指南車)와 오자(吳子)의 여황(艅艎)과 진(秦)나라의 소융(小戎)과 한(漢)나라의 무강(武剛)과 양복(楊僕)의 누선(樓船)과 왕준(王濬)의 용양(龍驤)에 대해 그 제도를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삼판(三版)이 이미 물에 잠겼는데도 진양(晉陽)은 완전하였으며, 70개의 성이 모두 함락되었으나 즉묵(卽墨...